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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을 부르는 시어의 주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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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인이 지은 집’은 군계일학이었다. 한 편의 시가 마치 한 권의 책과 같은 질량감과 완성도를 지니고 있었다. 한 노인이 집에 들어가는 과정, 즉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아무런 무리없이 균등한 밀도를 바탕으로 통일감을 형성한 점이 크게 돋보였다. 특히 서사적 요소에 서정적 요소를 차근차근 잘 어우러지게 한 데서 오는 감동이 컸다. 이번 심사를 통해 심사위원들은 한국의 서정시가 본궤도에 오른 느낌을 받았다. 한때 과도한 부담으로 느껴졌던 현실참여라는 짐을 이제 비로소 내려놓은 것 같다는 점을 부기한다.” (김남조, 김광규, 정호승)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심사를 맡았던 원로시인들이 길상호의 작품을 선정하며 한 심사평이다. “어떤 놈인지 얼굴 좀 보자”며 원로들은 길상호를 늦게 얻은 외둥이처럼 편애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신춘문예 당선작을 두고 ‘한국 서정시가 본궤도에 올랐다’는 극찬이라니. 길상호 시인을 나에게 추천한 이 역시 시인이었다. 단단한 내공에 인품도 뛰어나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시를 좋아하는 이들은 유독 길 시인의 작품을 공유하고 있었고, 캘리그라퍼는 길 시인의 문장을 즐겼다. 시인들 역시 길상호를 두고 모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시어의 마술사라며 좋은 서정시의 본보기로 짚고 있었다.

길상호의 시는 대학 시절 나와 작은 자취방에서 겨울을 나던 한 청년 시인의 그것을 떠올리게 했다. 지독한 고독함과 배고픔, 그리움이 뒤섞여 남루한 가족사에 힘겨워하곤 했다. 늘 언어의 칼끝을 자신에게 겨누었지만, 타인에 대한 연민으로 밤새 앓던 사람이었다. 길상호의 시에서 그 사람의 체취가 났다. 내 벗은 요절했기에 청년 시인으로만 남았다.

시인과 만남은 뜻밖의 설렘을 준다. 내가 버스 안에서 시집을 읽었던 적이 언제였나. 인터뷰는 인사동의 조용한 찻집에서 했다. 얼마 전 제주를 무작정 걸었던 그는 제주 소주 ‘한라산’에 빠져있었고, 그래서 2차는 한라산을 곁들이며 달렸다.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죠. 등단작품 ‘그 노인이 지은 집’은 오랜 시간 만지작거리다 이청준 소설가의 ‘목수의 집’을 접한 순간 가슴이 떨렸고, 시를 완성했다고 들었습니다.

이 소설을 한 편의 시로 만들면 어떤 느낌일까 하고 생각했어요. 일주일 동안 집에 대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죠. 다행히 제가 군 제대 후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며 집 짓는 과정을 익혀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그리고 아버지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어요. 아버지가 어렸을 때 집 한쪽 벽면을 황토랑 볏짚을 발라 고치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이런 것들을 엮어서 최대한 인공적이지 않은 삶의 집을 짓는 것을 생각했어요. 머릿속에 몇 주간 담아두어 익혔다가 막상 쓰는 데는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어요.

처음 응모해서 바로 당선되었어요. 작품이 뽑힐지 알았습니까?

네.

의외다. 이런 경우 기자는 더는 물을 말을 찾지 못한다. 당선을 확신한다는 건 이런 의미가 있다. 등단 준비를 오래 해 작품의 예술적 성취를 보는 안목이 있거나 아니면 꿈이 용하다거나.

그동안 시 공부한 것을 모두 집결시킨 작품이라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발표 전날 꿈을 꿨는데 신문기자가 당선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게시판엔 제 이름이 없어 당황스러웠지요. 그런데 조금 있다가 다시 기자가 나타나 저거 잘못된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다음 날 신문사로부터 축하 전화를 받았어요.

물론 어떤 이들은 응모해서 한 번에 등단했으니 천운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응모 전에 많은 작품을 창작하면서도 스스로 모자란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오랜 세월 응모를 하지 않았던 거거든요. 그러니 습작 기간이 짧았던 건 아니지요.

시인의 언어는 섬세하고 정밀했다.
시인의 언어는 섬세하고 정밀했다.ⓒ민중의소리

그 노인이 지은 집


그는 황량했던 마음을 다져 그 속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먼저 집 크기에 맞춰 단단한 바탕의 주춧돌 심고
세월에 알맞은 나이테의 소나무 기둥을 세웠다
기둥과 기둥 사이엔 휘파람으로 울던 가지들 엮어 채우고
붉게 잘 익은 황토와 잘게 썬 볏짚을 섞어 벽을 발랐다
벽이 마르면서 갈라진 틈새마다 스스스, 풀벌레 소리
곱게 대패질한 참나무로 마루를 깔고도 그 소리 그치지 않아
잠시 앉아서 쉴 때 바람은 나무의 결을 따라 불어가고
이마에 땀을 닦으며 그는 이제 지붕으로 올라갔다
비 올 때마다 빗소리 듣고자 양철 지붕을 떠올렸다가
늙으면 찾아갈 길 꿈길뿐인데 밤마다 그 길 젖을 것 같아
새가 뜨지 않도록 촘촘히 기왓장을 올렸다
그렇게 지붕이 완성되자 그 집, 집다운 모습이 드러나고
그는 이제 사람과 바람의 출입구마다 준비해둔 문을 달았다
가로 세로의 문살이 슬픔과 기쁨의 지점에서 만나 틀을 이루고
하얀 창호지가 팽팽하게 서로를 당기고 있는,
불 켜질 때마다 다시 피어나라고 봉숭아 마른 꽃잎도 넣어둔
문까지 달고 그는 집 한 바퀴를 둘러보았다
못 없이 흙과 나무, 세월이 맞물려진 집이었기에
망치를 들고 구석구석 아귀를 맞춰나갔다
토닥토닥 망치 소리가 맥박처럼 온 집에 박혀 들었다
소리가 닿는 곳마다 숨소리로 그 집 다시 살아나
하얗게 바랜 노인 그 안으로 편안히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전 사실 좀 의외였습니다. 지금 40대 중반의 시인이 6, 70년대의 향토색 짙은 서정시를 구사한다는 것이요. 이재무 시인이 특히 길 작가의 작품을 치켜세우더군요. 길 시인을 두고 시인이 좋아하는 시인이라는 평도 있습니다. 문풍이라고 할까요. 대학시절 읽었던 농민 시인, 향토 시인 그 특유의 정서가 배어있습니다.

하하, 글쎄요. 이재무 선배님은 대학 선배라서 특별히 아끼는 마음을 갖고 계실 것 같아요. 등단하자마자 많은 선배님과 선생님들께서 아주 따뜻하게 환대하셨어요. 제 시어에 있는 향수와 향토색 짙은 특유의 정서를 아끼셨어요. 이런 건 아무래도 어린 시절 촌에서 새벽부터 밭일하고 자연과 동무했던 경험 덕분이라고 봐요.

그런데, 후배 시인들이나 애호가들이 제 시를 꼽는 건 아무래도 잘 짜인 규범 같은 시라서 그런 것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까 학생들이 보고 배우기 좋은 시라는 거죠. 후배들도 등단하기 위해 준비하면서 제 작품이 도움이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다른 의미로는 일정한 틀에 갇힌 시라는 의미로도 읽힐 수 있어서, 저 스스로는 그런 이야기가 불편한 부분도 있어요. 시를 쓰면서 첫 시집이 주는 갑갑한 같은 것을 지금도 느끼곤 하거든요.

작가들은 “배우기 위해 작법을 익히지만, 완숙해져서 자신의 것을 온전히 쓰려면 기존에 배운 작법을 모두 버려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다시 물었다. 과거 자신의 시에 대한 불편함, 못남과 창작자로서의 고단함이 찾아올 땐 어찌 합니까? 그런 갑갑함이 ‘저녁의 퇴고’에도 드러납니다.

첫 시집 출간 후 돌아보면 내 시는 너무 정직하고, 이미 배운 시적 규범 안에서만 썼다는 생각을 했어요. 자유로운 기운과 감정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시적 형태에 내용을 가두려 했다는. 그 후 감성을 터뜨릴 수 있는 부분은 더 자유롭게 터뜨려 놓자 생각을 고쳐먹었지요.

작품 경향을 바꾼다는 건 작가에겐 생활 전반을 바꿔야 한다는 걸 의미해요. 그러니까 전에 갖고 있던 인식, 생활습관, 환경 등을 모두 버려야 하는 거지요. 전 늘 숲과 자연이 어우러진 곳에서 자랐고, 그 안에서 시를 써왔어요. 제 시의 서정성에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죠. 그 단정함을 깨뜨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태원 환락가의 중심으로 이사했습니다. 성 소수자 골목이 있었고, 몸값을 흥정하는 이들이 있고, 외국인 노동자가 드나들고 이슬람 사원이 보이는 곳이죠. 두 번째 시집을 위한 도전이었어요. 그래서였을까요. 두 번째 시집에선 좀 자유로운 기운이 있어요.

그런데 이태원 생활은 상당히 혼란스러웠어요. 그러니까 이태원 생활이 내 것이 아닌 것으로 점점 힘들어졌어요. 결국 북한산 자락으로 이사하고 나서야 편안해졌지요. 사람이 가진 그 정서적 근원은 그리 쉽게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죠.

1집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 2집 모르는 척 , 3집 눈의 심장을 받았네, 4집 우리의 죄는 야옹
1집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 2집 모르는 척 , 3집 눈의 심장을 받았네, 4집 우리의 죄는 야옹ⓒ민중의소리

그는 첫 시집 ‘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로 현대시동인상을 수상했다. 이미지를 꽉 짜인 축조물로 엮어내는 근래 보기 드문 시인으로 호평받았다. 문단의 관심이 정점에 달했을 때 나온 두 번째 시집이 ‘모르는 척’이다. 시인 이수정의 평이 절묘하다. 그는 첫 시집에 실린 시들의 비유와 이미지의 정교함을 보고 ‘저렇게 쓰다간 이 사람 일찍 죽겠다’ 는 생각을 했고, 두 번째 시집을 읽곤 시인이 수압을 견뎌 더 어두운 심해로 가려가는 것을 보고 우울해졌다고 했다. 책이 나오자 평단의 반응은 엇갈렸다. 서정시의 기린아 길상호가 계보를 버리고 요즘 작가들 경향으로 갔다는 반응. 반대로 그의 시가 일찌감치 모범답안의 그물을 뚫고 새로워졌다는 평가. 그리고 북한산 자락으로 돌아와서 쓴 세 번째 시집 ‘눈의 심장을 받았네’에선 다시 서정시의 본류를 올라탄 그를 볼 수 있다.

‘무한락스’ ‘아침에 버린 이름’ ‘도비왈라’ 와 같은 작품엔 존재에 대한 괴로움과 가족사에 대한 응어리 같은 것이 묻어납니다. 세상과 조응하지 못하는 고독한 청년의 감수성말입니다.

존재에 대한 괴로움이지요. 스스로 만들어놓은 감정 덩어리들. 괴로울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거꾸로 생각하면 그런 괴로움들이 있어서 살게 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해요. 살아가는 감각 자체를 잃지 않게 해주는 것들이죠.

그런데 그 괴로움의 연원은 아버지였어요. 아버지가 시를 쓰게 해주셨죠. 아버지가 집을 떠난 후로 사는 게 뭘까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고, 나이 들어선 아버지가 세상의 괴로움을 증명하는 하나의 단서로 발전한 것 같아요.

10남매라고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쌍둥이로 태어났는데 아버지 없이 자라셨다고요. 어머니가 힘드셨겠습니다.

어머니도 힘들었지만, 형과 누님들도 일찍부터 살림을 지키기 위해 경제 생활에 뛰어들어야 했어요. 형제가 5남 5녀였는데, 저와 동생이 일란성 쌍둥이였지요. 4살 때 아버지는 집을 나가시고 다른 살림을 차리셨죠. 가난도 지독했지만, 집안을 가득 채운 어두운 분위기 있잖아요. 어릴 때 사진을 보면 활달하고 잘 웃던 애가 어느 한순간 침울한 아이로 바뀌어 있어요. 아버지의 부재가 어린 가슴에 응어리로 남았나 봐요. 쌍둥이였는데, 동생은 다부진 체격으로 운동을 잘했고 전 공부를 잘했지만 몸이 약했어요. 가족이나 동네 사람들은 우리 쌍둥이를 보고 “둘을 합쳐 놓으면 완전할 것”이라고 말하곤 했어요. 불완전체로 보였던 거죠.

아버진 일 년에 한두 번 오셨는데 저에 대한 관심은 각별하셨던 것 같아요. 용돈과 선물도 따로 챙겨서 주셨어요. 아버지 성정에 공부를 잘하는 나를 더 흐뭇하게 여기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원망과 그리움과 같은 감정이 한 데 뒤섞여 버린 것 같아요. 아버지가 밉지만,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매일 했어요. 집에 있을 수가 없었어요. 어떤 탈출구가 필요했거든요. 그러다 이상의 시 ‘거울’을 보고 충격받았어요. 시에서 말하는 이는 내면적 자아가 충돌하고 있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분명 나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겉의 나는 착한 아이였지만 내 속의 나는 뛰쳐나가려 울부짖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중학교 국어 시간에 학교에서 처음으로 시화전을 열었어요. 좀 유치한 시였는데 작품을 본 선생님께선 계속 시를 썼으면 좋겠다고 칭찬하셨거든요. 그래서 시인이라는 목표가 일찌감치 마음속에 정해졌지요.

어려서는 시를 쓰면서 자아를 막무가내로 괴롭혔어요. 그런데 시에 대한 관점이 바뀐 일이 있지요. 어느 날인가 ‘아버지’라는 시를 밤새 울면서 썼어요. 그런데 시를 다 쓰고 나자 속이 시원했어요. 그건 원망이나 저주가 아니고 아버지의 처지에서 다시 세상을 재구성해서 쓴,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시였어요. 아버지 삶에도 말하지 못한 고통이 있었을 것이다. 나에 대한, 우리에 대한 마음은 또 어땠을까 하는 생각.

이날 처음으로 ‘시’란 원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 삶의 처지를 이해하기 위해 쓰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사물이나 사람. 그 존재와 삶에 대한 이해가 시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요.

요즘도 아버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저를 종종 발견해요. 이제는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문득문득 그렇게 아버지는 시를 통해 나타나곤 하지요.

정말 가족사란 그렇게 검질긴 것일까. 길상호의 등단작품엔 한 노인이 등장한다. 그는 기둥 사이에 휘파람으로 울던 가지들 엮어 채우고 붉게 잘 익은 황토와 잘게 썬 볏짚을 섞어 벽을 바르고 있었다. 시인이 어릴 적 본 아버지의 뒷모습이었다.

가장 최근에 펴낸 시집이 ‘우리의 죄는 야옹’(2016.문학동네)이다. 그는 실제로 3마리의 ‘냥이’를 모시고 사는 ‘집사’다. 첫째 ‘물어’는 박지웅 시인이 기르던 아기 길냥이였고, 나머지 두 마리 ‘운문이’랑 ‘산문이’이는 계룡의 친구 집에 들렀다가 본 15마리의 무리에서 데려온 남매다.

길상호가 키우는 냥이들. 좌측부터 물어, 산문, 운문이다. 그는 고양어어를 배우고 있다. 나중 고양이어를 인간계에 전하는 능력을 준비하고 있다.
길상호가 키우는 냥이들. 좌측부터 물어, 산문, 운문이다. 그는 고양어어를 배우고 있다. 나중 고양이어를 인간계에 전하는 능력을 준비하고 있다.ⓒ길상호 제공

버려진 것들에 대한 연민이랄까요? 저도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고 ‘물어’도 엄마에게 버림받은 길고양이였어요. 처음 물어를 본 날이었는데, 눈도 못 뜬 상태에서 무릎 속으로 자꾸 제 무릎 속으로 기어들어 오더라고요. 따뜻한 온기를 찾는 것이죠. 그런데, 그 순간 제 무릎이 오히려 따뜻해졌어요. 처음 만난 날 그런 생각을 했어요. 어쩌면 시인은 온기를 나누는, 체온을 나누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

시집을 내며 덧붙인 시인의 말이다.

물아와 운문이 산문이 고양이들을 데려와 함께 지내면서 나는 야옹야옹. 새로운 언어를 연습한다. 말이 되지 않는 고양이어를 듣고서도 눈치가 빠른 고양이들은 나를 정확하게 이해해준다. 얼토당토않은 말은 적당히 무시하면서……
시가 되지 않는 문장들은 교감으로 당신에게 가닿길 바란다.

사람의 세계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을 고양이들은 보여줘요. 가령 눈이 오면 우린 그 정경에 주목하지만, 고양이들은 여러 가지의 감각을 한꺼번에 즐기고 있어요. 창턱에 앉아서 그윽한 눈빛을 하고, 귀를 쫑긋거리면서, 꼬리를 살랑거리면서, 가끔씩 털을 세우기도 하면서. 가끔은 그런 행동을 저도 따라 해 보곤 하는데, 평소 의식하지 않았던 비와 눈을 새로운 눈으로 관찰하게 돼요.

작품 중 ‘야옹야옹 쌓이는’ 은 따뜻한 판타지로 읽었습니다. 마치 죽은 길고양이를 위한 추모곡 같은.

길상호가 그린 고양이 그림
길상호가 그린 고양이 그림ⓒ길상호 제공

야옹야옹 쌓이는


낡은 문장의 날들이 눈에 덮이고
비로소 밤이 전생처럼 고요해지면
고양이 영혼들이 줄지어 골목으로 모여들었네
사뿐사뿐 발걸음마다 꽃무늬가 찍혀서
눈길은 온통 향기로 채워졌다네
응달을 지키고 서 있던 눈사람은 이때
발바닥이 시린 고양이들을 위해
눈송이 긁어모아 모닥불을 피워두었는데
영혼이 쬐기에 가장 알맞은 온도
어떤 고양이는 잘려나간 발까지 따뜻해져서
더는 절뚝거리지 않아도 되었다네
지난 생의 못 다한 대화가 깊어질수록
눈빛을 받아먹으며 눈발은 굵어지고
비밀스런 전설이 발톱처럼 자라기도 했다네
담장 가득 이야기를 받아 적느라
가로등은 눈 한번 깜빡일 수가 없다네
아주 가끔 성에꽃 핀 창문을 열고
풍경을 몰래 훔쳐보는 자가 있는데
오드 아이가 되어 남은 생을 살게 된다네
고양이들 혀끝의 울음이 끝날 때까지
야옹 야아옹 눈은 그치지 않는다네


길 시인의 시집, 모든 시에는 구체적인 소재가 있고 묘사가 있습니다. 사물의 구체성에서 화자의 생각으로 번지더군요.

네. 잘 보셨어요. 대학시 절엔 관념적인 시도 많이 썼어요. 그런데 그래서는 시인이 하고자 하는 말을 친근하게 전달할 수 없더라고요. 구체적인 사물과 현상을 통해 공감해야겠구나 싶었어요.

대학 시절 창작동아리 선배가 그러더군요.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면 한 시간 정도는 나무를 뚫어지게 바라봐라. 그렇게 관찰부터 하라고. 전 정말 나무 옆에 서서 한 시간을 묵묵히 지켜봤어요. 단순했던 감각에서 점차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끼어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생각의 확장인거죠. 나무뿐 아니라 나무가 갖고 있던 공간, 시간들이 느껴지기 시작했거든요. 그렇게 관찰하는 일에 더 매달렸어요. 학교에서 자취방까지 거리가 5분이었데, 전 늘 2시간 이상을 걸어야 했어요. 관심을 끄는 것이 있으면 옆에 앉아서 바라보고 생각하고, 그렇게 2~3년을 보냈던 것 같아요. 대학 때는 하루에 13편까지 습작하면서 살았어요. 그때의 시를 보면 말도 되지 않는 것들이 많긴 하지만…. 그 작업으로 시의 토양이 쌓였던 것 같아요.

구두 한 마리


일 년 넘게 신어온 구두가
입을 벌렸다 소가죽으로 만든
구두 한 마리 음메-첫울음 울었다
나를 태우고 묵묵히 걷던 일생이
무릎을 꺾고 나자 막혀버리는 길,

풀 한 줌 뜯을 수 없게 씌어놓은
부리망을 풀어주니 구두가
길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돌멩이처럼 굳어버린 기억이
그 입에서 되새김질되고
소화되지 않은 슬픔은 가끔
바닥에 토해놓으면서 구두 한 마리
이승의 삶 지우고 있었다
바닥에서 살아나는 시간을 따라

다시 걸어야 할 시린 발목,
내가 잡고 부리던 올가미를 놓자
소 한 마리 커다란 눈을 감으며
구두 속에서 살며시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그는 시가 써지지 않으면 몇 달이고 그냥 놔둔다고 했다. 어차피 제 안에 있는 것들을 모두 꺼내 써버렸기 때문에 안달한다고 창작이 되는 건 아니라고. 그는 작은 배낭을 메고 산이고 들이고 걷는다고 했다.

여행 다니면서 많이 썼어요. 여행, 특히 걷기는 가장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해줘요. 시인이 좋은 점은 작은 메모장 하나만 있으면 쓸 수 있다는 거죠. 또 최근에는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벗도 생겼고요. 아마 제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많은 책과 시를 읽은 사람일 겁니다. 같이 걷기도 하고 야생화를 따서 차도 끓이고 그러면서 다니고 있지요.

다른 사람의 작품을 읽는 것도, 철학이나 미학,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도 도움이 많이 돼요. 새롭게 대하는 것들은 늘 길들여진 생활에 또 다른 긴장감을 부여하거든요. 그래도 너무 안 나올 때면 그냥 바느질을 해요. 가방을 리폼하고 옷을 꺼내 누벼요. 단순한 작업이지만 낡은 것에 새로움을 부여하는 또 하나의 작업이죠.

그러고 보니 그의 옷엔 바느질로 박아놓은 주머니가 달렸고, 시인이 직접 만든 가방이 있다. 그는 스케치를 하고 사진을 찍는다. 요리를 좋아하고 제 손으로 빨래한다. 그는 독신이다. 결혼할 생각은 없는지 물었다.

가방은 길상호가 만든 것이다. 그는 바느질을 통해 손으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을 즐긴다. 그만의 창작방법이다.
가방은 길상호가 만든 것이다. 그는 바느질을 통해 손으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을 즐긴다. 그만의 창작방법이다.ⓒ민중의소리

결혼을 안 하려 해요. 아버지와 유사한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자랐어요. 한 여성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저의 짐을 배우자가 짊어지게 하는 것도 싫고요. 창작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사색과 우울함 같은 것을 전가하고 싶지 않거든요. 무엇보다 지금 제가 너무 잘 살고 있어요. 요리, 빨래, 리폼 뭐 다 할 줄 알거든요. (웃음) 거기에 고양이 세 마리가 곁에 있고요. 아시겠지만 시인은 궁핍할 때가 많죠. 그 궁핍을 오히려 즐길 때도 많고요. 만일 배우자가 돈을 좀 벌어 저를 후원한다고 하면 저는 그걸 못 견뎌 할 게 분명해요.

내가 아는 한 시인은 꽤 오래 등단을 준비했지만 하지 못했고 생활고로 힘들어 하는 모습을 봐요. 나이 들수록 점점 술도 늘고 자괴감도 깊어지는 것 같아 시인의 길이 참 만만치 않구나 생각해요. 그러니까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로 성공하겠다는 사람이 빈곤으로 인해 겪는 삶의 상처, 가족의 불화 같은 것을 목격하면 저도 우울해지거든요.

후배들에게도 가끔 이야기하는데, 시가 생활을 파괴하면 안 돼요. 생활이 극단적으로 어려워지면 자신을 비관하고 이것이 또 시로 나타나거든요. 전 차라리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 꾸준히 시를 쓰라고 해요. 그게 오히려 시인의 생명을 유지하는 방법이거든요. 시가 책상에서 나오는 건 아니니까.

제가 29살에 등단했는데, 중학교 시절부터 많은 시간을 들이며 연습하고 노력했던 결과라고 생각해요. 등단이라는 건 노력 끝에 얻어지는 하나의 결과일 뿐이죠. 시를 쓸 때 남과 비교도 많이 하면서 좌절하기도 하죠. 그런데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강점, 잘 짓는 방식이 있거든요. 오히려 그것에 집중하면서 단점을 줄이는 방법을 택하라고 조언하곤 해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밀고 나갈 힘도 줄어들거든요.

안양예고에서 학생을 가르치면서 그런 경험을 했어요. 재능이 뛰어난 친구가 있고 반대인 친구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인식이에요. 재능이 있는 친구는 늘 칭찬으로 고무되었기에 창작에 대한 노력,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더군요. 반대로 작은 칭찬에도 스펀지처럼 받아들이는 아이는 결국 자기 시를 써내더군요. 그러니까 재능이라는 건 자기 자신도 모를 때가 있어요. 그게 일찍 터지는 사람이 있고, 오랜 기간 묵혀서 나오는 사람이 있는데 결국 누가 참고 꾸준히 쓰냐는 문제겠죠.

시인을 꿈꾸며 준비하는 이들에게 해주는 창작방법, 조언을 하나만 듣고 싶습니다. 작가님도 국문학과를 나오셨는데, 학부과정이 도움이 되던가요?

전 꾸준하게 관찰일기를 쓸 것을 권해요. 매일 그날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사물과 상황, 그 특성을 하나씩 짚어서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합니다. 그저 자신의 가슴 안의 감정만을 토로하면 문학적 근원이 없어지거든요. 사물에 대한 시선, 관찰에서 모든 창작이 시작되는데 이 훈련을 많이 권해요.

세상의 모든 사물은 닮아있는 다른 무언가가 있어요. 시라는 것은 유사성을 찾아내는 것부터 시작하는 건데, 저는 그 유사점을 찾아내는 것이 너무나 즐거워요. 나와 별개라고 생각했을 때와는 사물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져요. 그래서 시를 쓰면서 사물과 인연 맺는 작업들을 많이 하게 돼요.

문창과 교육만으로 시를 쓸 순 없어요. 절대적으로 자기 체험과 지식을 통한 훈련이 필수적이죠. 그런데 전 대학 생활을 하면서 철학, 미학, 심리학, 기호학 등의 수업을 통해 많은 도움을 얻었어요. 특히 국문학과 수업 중 하나였던 <의미론>은 언어의 근원을 밝히는 내용이라서 더 큰 도움이 되었지요.

무엇보다 동아리 활동에서 많이 배웠어요. 선배들과 매주 교재를 갖다놓고 학습도 했고, 때로는 졸업한 선배들까지도 와서 합평회를 함께 해주며 시를 잡아주셨어요. 합평은 막힘없이 자유롭게 하는 편이었는데, 그래도 몇 개의 원칙은 있었어요. ‘시를 통해 상대를 공격하면 안 된다’, ‘시에 드러난 그 사람의 삶에 대한 태도나 가치관, 감정까지 손대선 안 된다’는 거죠. 시를 쓰는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그 내용도 더 파악하기 쉬워지는 법이니까요.

끝으로 그에게 꿈을 물었다. 어른이 되고부터 꿈 대신 계획이나 구상을 물었는데, 이산아카데미에서 만난 사람들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

제 꿈은 고양이들과 대화를 자유롭게 나누면서 그들의 세계를 사람들에게 시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고양이와 대화를 나누게 될 정도가 되면 세계의 비밀도 더 쉽게 눈치를 챌 수 있는 시인이 되어 있겠지요.

감자의 몸


감자를 깎다 보면 칼이 비켜가는
움푹한 웅덩이와 만난다
그곳이 감자가 세상을 만난 흔적이다
그 홈에 몸 맞췄을 돌멩이의 기억을
감자는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벼랑의 억센 뿌리들처럼 마음 단단히 먹으면
돌 하나 깨부수는 것 어렵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뜨거운 夏至의 태양에 잎 시들면서도
작은 돌 하나도 생명이라는
뿌리의 그 마음 마르지 않았다
세상 어떤 자리도 빌려서 살아가는 것일 뿐
자신의 소유는 없다는 것을 감자의 몸은
어두운 땅 속에서 깨달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웅덩이 속에
씨눈이 하나 옹글게 맺혀 있다
다시 세상에 탯줄 될 씨눈이
옛 기억을 간직한 배꼽처럼 불거져 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독을 가득 품은 것들이라고
시퍼런 칼날을 들이댈 것이다


시인 길상호

1973년 충남 논산 출생
한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 『모르는 척』 『눈의 심장을 받았네』 『우리의 죄는 야옹』
사진 에세이 『한 사람을 건너왔다』
현대시동인상, 천상병시상,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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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재 이산아카데미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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